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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안내
미사
미사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을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 23-25 참조) 예수님은 그리고 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미사는 바로 이를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에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위와 같은 말씀으로 축성할 때에 예수님 친히 사제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변화시키십니다. 또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처럼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우리에게 영적 양식으로 내어주십니다. 그래서 미사를 ‘성체성사(聖體聖事)’라고 부릅니다.
성사
성사 생활의 시작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인 우리는 모두 이러한 생각을 지닙시다. 혹시 여러분이 무엇인가 달리 생각한다면, 그것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 같은 길로 나아갑시다. (필리 3, 12-16).”
성사란?
하느님은 인간 삶의 여정에 함께 하시면서 인생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그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한층 성숙한 당신의 자녀로 받아 들이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주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더 깊은 성화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로 드러내는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푸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립니다.
성사란 어떻게 드러나는가?
성사는 “외적 행위로 나타나는 증표로,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한국 가톨릭 대사전)”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심양면을 갖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일면인 마음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고, 그 사람의 정신이나 지식 역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의 부수적(일면적, 지엽적, 단편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 제일주의, 신학의 지식이 풍부하면 열심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전체적 의미, 곧 조화된 전 인격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정상적 신앙인은 인간다운 자세로 하느님과 교류를 가지므로 인격의 전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에만 관계하고 국가는 육신에 관계 한다.’는 말은 문장은 되지만 맞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활, 인격, 존엄성, 인간의 가치관들이 항상 함께 자리하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에는 인생살이의 모든 면들을 내적과 외적으로 표시하게 되었는데 이를 성사라 설명합니다.
성사들의 표징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표징들로서는 교육적 역할도 합니다.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립니다.
성사들은 은총을 베풀지만, 성사 집전을 통해 신자들이 은총을 받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사들의 표징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명을 이해하고, 또한 그 생명을 보양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지극한 열성으로 자주 받는 것이 좋습니다(전례헌장 59).
거룩한 표지(Sacred Signs)인 성사
전례교육은 “아이에게 십자성호를 옳게 긋는 것을 가르치고, 켜놓은 촛불에서도 아이의 속마음을 말해주는 표상을 알아보게 하고, 마음과 몸으로 아버지 집에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그런 어머니 역할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심미적 입장에서가 아니고, 또 어떤 생각을 동작으로 그저 꾸민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성사는 마치 부모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정말로 생활을 함께 하는 스승의 역할과 같습니다.
주일을 주님을 위한 참 주일로, 하느님의 식탁에 초대받는 참 축제로 느끼게 하는 성사입니다.
교회 생활의 한 해, 그 계절, 성당 문과 종, 성당의 공간과 행렬, 이 모든 것이 거룩한 표지이므로 산 체험 속에 파고들어 자리 잡아 깨우쳐주는 그런 스승일 것이다(“거룩한 표징” 머리말에서).”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들이 또한 우리에게 삶의 참된 표상이나 신앙생활의 모델로 등장하여 역사에 남게 된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이러한 분들의 삶은 인생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어 영원한 진리를 따라가며 천상을 목표로 살아가신 신앙의 표본들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생애야말로 하느님의 거룩한 표지가 인간의 생애라는, 감지할 수 있는 역사적 실제 사실로 제시된 성사입니다. (로마 8, 17; 콜로 1, 24 ; 2티모 2, 11- 12; 1베드 4, 13).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품성사를 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정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현대에도 다시 살아계신 것 같이 성사를 통하여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로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와 결실, 풍부한 사랑의 신비를 표시합니다(에페 5, 32). 이 혼인 성사의 힘으로 부부생활과 자녀 출산과 그 양육을 통해서 서로 성덕에 나아가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그들의 신분과 역할에 고유한 은혜를 받습니다(1코린 7, 7). 이 혼인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세세에 영속시키게 됩니다.
교회의 칠성사(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11)
신도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회에 결합되었고, 그리스도교적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호를 받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재생되었기에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됩니다. 견진성사로 신도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며 옹호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됩니다. 성체의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신도들은 신적 희생을 하느님께 바치며 자신을 또한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찬 때에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신도들은 하느님 백성으로 구체적 일치를 표현합니다. 고해성사로 신도들은 하느님께 잘못한 죄를 용서 받으며 죄로 상처 입혔던 교회 앞에서, 새로워진 사람으로 교회와 다시 화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보다 나은 완숙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병자들에게 성유를 바르는 사제들의 기도로써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현양되신 주님께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도록 청하며(야고 5, 14-16). 또한 병자들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연스럽게 결합시켜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느낄 수 있게)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성사인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성사이신 그리스도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의 위격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두 가지 본성을 지닌 한 위격이시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므로 그가 하시는 행위는 하느님의 의도이시며 인간의 행위라 하였습니다. 인간인 예수님은 인간의 존재를 따라 하느님의 생명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가르침은 곧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점을 예수님 자신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 29,-30).”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의 감정을 나타낸 표현을 본다면,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3-36).”하는 점에서 참으로 인간다운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면으로 우리에게(감정을 지닌 인간들) 모범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 기본교리
세례성사의 개념
세례성사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죄의 상태로부터 물과 성령으로 정화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출생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결합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세례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요.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이 되고 모든 죄와 벌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성사라고 대부분의 교리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죄를 벗어난 인간 상태로 승격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어린이 세례 예식서).
입교의 성사인 세례성사
세례성사는 성체성사, 견진성사와 함께 그리스도의 입교 성사라고 합니다. 곧 세례성사로써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고, 성체성사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견진성사로서 그리스도를 닮게 되어 교회의 건설을 위해 능동적이고도 실천적인 증거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크리스찬 입교의 성사는 성품과 혼인성사를 준비시키는 성사이면서 더구나 세례성사는 생명과 천국의 입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성사를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맡긴 신약 최초의 성사입니다(마태 28, 19). 곧, 세례성사는 성령의 은총으로 빛을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하는 신앙의 성사입니다(어린이 예식서 총지침 3).
물로 받는 세례 이외의 세례
화세 : 자기의 뜨거운 열성으로 자신의 죄를 씻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의 정식 성사 집행 없이 진심으로 자신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완전한 통회가 이루어지는 사랑의 세례입니다.
혈세: 피로써 자신의 죄를 씻는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 신앙인이 자기의 신앙을 위해 순교할 때 이루어지는 세례입니다. 죽음이 임박하여 영세할 시간도 없고 그런 조건이 준비되어 있지 못할 때 순교로써 생명을 바치게 되면 비록 물로써 씻는 세례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의 효과
죄에 대한 세례의 효과 : 제 2 차 바티칸공의회는 세례성사를 받으면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세례성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한다고 가르칩니다(계시헌장 3; 교회헌장 2). 따라서 세례성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사도행전 4, 12)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결국 세례성사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의미는 인류의 원조 아담에게서 비롯된 하느님과의 단절이 화해로 다시 이어지고, 원죄와 지금까지 지은 죄와 그 잠벌까지 용서받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죄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자로 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 : 세례로 새로 태어난 자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룹니다. 일치를 이루시는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세례성사로 우리는 생명을 받게 됩니다(요한 6, 2). 이것은 더 이상 죽음에 예속되지 않음을 뜻하고(요한 8, 51) 초자연적 생명을 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됨 :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시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양자가 되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에페 1,5 ;요한 3, 1)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부성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례성사로 우리는 성령의 거처가 됨 : 세례성사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쳐하시게 됩니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내적 능력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외적인 법이나 다른 것보다 강력하게 우리 마음속에 윤리적인 규범과 내적 의무를 규정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것을 은총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세례 받은 자에게 마음 속 깊이 영향을 주어 여러 은총의 효과를 드러내게 하기 때문입니다(갈라 5, 22). 이와 같이 이 성령은 새로운 윤리생활의 원천이 되고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이 됩니다.
교회와 일치 :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 교회의 일원이 되고 사도직에 참여하게 됩니다.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됨은 곧 교회와 일치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선물 중의 가장 큰 것은 성체의 제사이고 세례 받은 신자들은 사제와 더불어 성체의 제사에 참여하는 의무와 권한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교회의 창립목적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전 세계에 펴고 모든 인간을 구원에 참여케 하고 그리스도께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세례 받은 신자들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구원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평신도교령 3).
세례성사의 필요성
성서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성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마르 16, 16). 또한 성령 강림 날 성 베드로도 첫 설교 후 통회의 세례를 받으라 하셨습니다(사도 2, 38). 또한 세례의 필요에 관해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아무런 논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세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세례의 필요성을 신앙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세례성사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또한 사도들의 활동에서 사도들 스스로가 세례성사의 설정자로 나선 적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세례성사를 설정하셨고 자신들은 관리자, 일꾼으로 자처하고 있었습니다(갈라 4, 1-2).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언급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세례에 대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는 성령과 불로써 이루는 세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마르 1,9-11; 루카 3, 20-21; 요한 1,32-34). 또한, 세례 예식의 절대성을 암시하면서 세례의 주요 효과인 영, 신적 출생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요한 3, 5). 이처럼 새로운 출생이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하면서 세례성사의 의미를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요한 3, 22-30; 마태 3,11-12; 사도 19, 1-5). 이처럼 성서에 기록된 언급을 볼 때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셨고 이 세례성사를 통해 인간을 당신의 신적 생명에 참여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의 주체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또한 어른만이 아니고 어린이도 세례성사를 받아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트리엔트 공의회).
교황 바오로 6 세께서는 어린이들도 그리스도의 신적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 또 원죄로 인하여 성화은총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세례성사 집전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이레네오 성인께서도 세례의 보편적 필요성은 어린이에게까지 연장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의 세례에 관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신앙 조항으로 선포했습니다.
어른들이 유효한 세례성사를 받기위해서는 지향(Intentio)이 필요합니다. 즉, 세례성사를 받고자 하는 자발적 원의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세례성사를 유효하게 받기위해서는 지향 외에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최소한 기본 교리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시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동의만하면 세례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의 집전자
일반적으로 세례성사는 주교, 사제, 부제가 집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집전합니다. 그러나 세례성사의 주 집전자는 다른 모든 성사에서처럼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시에는 누구나 다 세례성사를 집전할 수 있습니다. 즉 이교인이나 다른 종파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올바른 지향만 있으면 세례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세례를 대세 혹은 비상 세례 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교회의 기본 교리 즉 하느님의 존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 세상이 구원되었다는 진리, 죽은 후에 심판이 있고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 아무라도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대세를 준 후 집행자는 대세자의 성명, 생년월일 또는 연령, 본명, 대부모, 세례일, 집전자를 적어서 관할 구역의 본당 사무실에 알려야 합니다.
세례성사의 예식
세례성사의 예식은 과거와 동일하되, 현대에 와 약간 변경되었습니다. 세례예식은 환영예식, 말씀의 전례, 성사집전, 끝 예식이라는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세례성사도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질료(Materia)와 형상(Forma)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질료(Materia): 세례성사의 질료는 물(순수 자연수)입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세례예식의 물에 관해서 언급하시고(요한 3, 5)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자의적으로 받아들였고 교회의 전통도 이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플로렌스와 트리엔트 공의회). 이 물은 본연의 의미상 씻는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세례성사를 받는 주체에 적용해야 합니다.
형상(Forma): 질료인 물을 부으면서 읽는 말 자체(기도문 또는 경문)를 의미합니다. 이런 말은 성사적 행위를 나타냅니다. 즉 “나는 당신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하는 말이 세례성사의 형상이고 이마에 붓는 물은 질료입니다.
세례성사의 거행
예비자는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대부 대모를 미리 정하고 지역 공동체의 집회에 참석하며 적당한 기간 동안 교리교육을 받고 준비를 갖추어 회심과 신앙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세례성사 예식은 예비자의 추천과 환영뿐 아니라 예비자 자신의 명백한 입교 지향과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통으로 세례성사 예식은 미사 중에 거행하게 됩니다. 이 입교식은 되도록 주일날에 거행하고 그 지역 공동체가 적극 참여하도록 일러두고 있습니다(어른 입교 예식서 240-244항 참조).
환영식 : 예비자와 대부모에 대한 물음으로 세례성사에 대한 원의와 함께 예비자의 자격 여부를 묻는 부분.
말씀의 전례 : 개회식은 생략하고 바로 말씀의 전례를 시작함.
– 간구와 참회식
– 구마 기도와 예비자 성유의 도유(O.C. = OIeum Catechumenorum): 집전자는 예비자의 가슴과 뒷덜미(경우따라 양손이나 혹은 더 적합한 지체)에 아무 말 없이 성유를 발라줌.
세례를 설명하는 예식
– 세례 후 기름 바름(S.O. = Sanctum OIeum 또는 S.C.=Sanctum Chrisma) : 크리스마 성유 도유는 영세자의 왕다운 사제직과 하느님 백성에 결합을 뜻함.
– 흰 웃을 입음 : 흰옷을 입는 것은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닮게 된 것과 새로운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임.
– 촛불을 켜줌 :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성소를 밝혀줌.
세례성사 이후 계속 미사를 진행할 때에는 신경을 생략(신앙고백을 하였으므로)하고 즉시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고 봉헌 예절에서부터 미사로 이어집니다.
세례의 집전
– 영세수 축성 : 이 때 인류 창조 때부터 하느님이 베푸신 사랑의 신비를 되새기며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함. 또한 성령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함으로써 주께서 제정하신 세례로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나누어 받게 되는 사실을 드러냄.
– 마귀와 죄를 끊어버림 : 세례성사는 하느님과 결합되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므로 그 반대되는 죄와 마귀를 끊어버림으로써 구세주의 언약대로 하느님과 신비로이 결합되는 것임.
– 신앙고백 : 집전자와 교우들 앞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려는 굳은 결의를 표명함.
– 세례식 : 삼위일체의 이름을 부르며 물로 씻는 예식으로 세례성사 중 가장 중요한 예식임.
세례성사의 인호(印呼)
교회는 세례, 견진, 성품성사는 영적이고 영원한 표지를 새겨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트리엔트 공의회). 이 표지를 인호라고 하는데 이것은 반복이 불가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인호는 영혼에 새겨져 없어지지 않는 표지를 의미합니다.
비오 12세께서는 세례성사로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이 되고 인호를 통해 신적 예배의 자격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다른 성사를 받을 권리를 받게 된다고 가르칩니다(회칙 Mediator Dei). 이 인호는 은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은총의 생명과 결합되어 있을 때 인호의 참된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의 상태가 아니거나 죄 중에 있더라도 인호는 없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세례명 : 세례성사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기 때문에 받는 이름입니다. 보통으로 옛날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례명과 세례성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본래 세례 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세례 받는 사람의 구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세례명 없이도 세례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대부모 : 신앙생활을 돌보아 주는 영혼의 부모라는 뜻입니다. 세례성사 때 대부모를 세우는 것은 초대교회 전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래는 박해 때 신자라는 확인의 신분보증과 좋은 평가의 증언을 위해서 대부모가 실천적인 이유에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는 대부모가 어린이를 대신해서 신앙을 고해하고 부모와 협력하여 신앙을 교육할 거룩한 의무를 갖습니다.
출처 : 가톨릭정보
✟ 기본교리
성체성사의 개념
성체성사란,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살아계신 성사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중심이 되시는 신비의 성사입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란, 제사의 요소와 성화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즉, 제사의 요소는 미사의 본질인 빵과 포도주의 축성에서 잘 나타나고 성화의 요소는 미사 때 영성체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체의 신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예배의 중심이 되고 은총과 성화의 원천이 됩니다.
성체성사의 명칭
초세기에는 성체성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Fractio Panis(빵을 나눔)로 인간의 주식인 빵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로 쓰였고 후에는 Coena Domini(주님의 만찬)으로 성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및 교회의 전례적인 모임을 의미하는 용어로 씌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일반적으로 성체성사를 지칭하는 용어는 Eucharistia(감사기도)로 본래의 의미는 ’축성’, ’축성된 빵의 조각’을 의미합니다. 결국 감사기도란 최고의 은혜를 주신 분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체성사를 받는 주체
영성체는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일치를 의미하고 일치의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영성체를 통해서 결합됩니다(교회헌장 11).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주체는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유효한 성사를 위해서는 올바른 지향이 요구됩니다. 즉, 성체성사를 받고자 하는 지향이 있어야만 합니다. 또한, 교회법에서 성체는 이성에 도달한 사람에게만 영해주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성체에 대한 존경심 때문입니다.
성체의 축성
주님의 몸인 성체의 축성은 미사의 성찬전례 부분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찬기도는 감사의 제사와 그리고 식사의 초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행하신 바를 서술하는 것이 그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미사의 절정 부분이라 할 수 있고, 이 때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게 됩니다. 이처럼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거룩한 신앙의 제사가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체성사
성체성사의 신비는 주님의 만찬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1코린 11, 20-35). 또한 사도 베드로의 전승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고(마르 14, 22-25), 사도 요한이 전하는 성체께 대한 약속에서도 잘 나타납니다(요한 6, 51-59).
성체성사의 출발점은 유대인의 파스카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탈출 24, 9). 즉 유대민족은 이집트의 노예해방을 기념하고 구원과 해방을 축하하는 성찬예식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파스카 성찬예식을 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업적과 수난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현존함을 기억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새로운 파스카(통과, 해방)가 되었으며 이 만찬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음식과 음료로서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마르 14, 22-24;루가 22, 19-20). 이처럼 성경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 친히 성체 성사를 세우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예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제사와 미사의 관계
미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참되고 고유한 제사입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는 미사성제는 피 흘리신 십자가의 제사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 제사가 다른 점은 봉헌양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미사는 피 흘림이 없이 봉헌되고 반면에 십자가상에는 피를 흘리면서 봉헌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 제사는 그리스도 친히 혼자서 봉헌하셨지만, 미사는 사제의 직무를 통해 봉헌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십자가 제사를 통해 구원의 효과를 충족시켰지만 미사성제는 십자가상 제사의 효험을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점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미사는 보다 생생하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자가상 제사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성체의 실체적 변화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변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사제의 축성으로 본질적인 핵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을 실체적 변화라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체변화는 현실적인 경험분야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실체변화의 교리는 하느님의 계시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창조행위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점은 창조는 무에서 유로 생성이 된 것이지만 이 실체변화는 이미 존재하는 실제가 다른 실체로 변화하는 것이 그 차이점이 됩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개입이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변화입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교회의 교의
교회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체성사에 현존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Trent 공의회). 그러나 실체변화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감각적인 형상은 그대로 존재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 상징적인 존재로만이 아니라 실제 현존하고 있음을 공의회를 통해 거듭 천명하고 있습니다(D. S. 1642).
성체성사의 필요성
성체성사가 중심이 되는 미사성제는 우리에게 구원의 모든 요소를 제공해 줍니다. 왜냐하면 미사성제는 십자가상 제사의 효과를 적용하는 것이고 그 적용으로 구원에 필요한 모든 선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 자체를 기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림이 없는 신비스런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영신적 선익을 이 미사성세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신영성체란? (Communio Spiritualis)
성체를 실제로 모시는 외에 원의로만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신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성체께 대한 신앙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통회행위와 더불어 하나의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의의 영성체는 그 준비 여하에 따라 큰 은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Trent 공의회는 실제적으로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신자들에게 이 신영성체를 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고 살이며 불멸의 음식이다(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성인).” “역사 안에 사셨던 그리스도와 성체 안에 그리스도는 동일한 분이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출처 : 가톨릭정보
✟ 기본교리
견진성사란?
세례성사를 재생의 성사라 하면, 견진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령의 성사로 우리를 쇄신케 하시고(요한 5, 3 : 티토 3, 5-6), 신앙을 성장하게 하시는 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견진 성사는 세례를 받은 자들만 받는 성사로 신앙을 보다 강하게 하고 신앙을 올바르게 고백하도록 하여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느님의 교회에서 좀 더 힘 있고 살아있는 몫을 차지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견진성사로써 그리스도교 입문 후의 길을 새롭고 힘차게 걷게 됩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로 새로 난 사람은 견진성사로써 성령의 선물을 받아 완숙한 신앙인이 되어 교회에 더 완전히 일치하게 됩니다(교회헌장 11). 결국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입문성사인 세례성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견진성사의 개념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 입문의 두 번째 성사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강하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생명을 완숙시킵니다. 또한 견진성사를 통해서 예언자이시고 사제이시며 왕인 그리스도를 보다 완전히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말과 행실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자신 있게 전함으로 교회 사명에 충실하고 교회의 발전에 적극 참여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견진성사는 주교가 신자에게 안수, 성유의 도유 그리고 규정된 기도문을 외움으로 변함없는 신앙을 지니도록 성령을 받게 하는 성사입니다.
견진이란 말은 희랍어 “크리스마”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유”, “기름을 바름”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신 분은 아오구스티노 성인입니다.
견진의 필요성
견진성사는 세례의 보충, 완성의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완전한 성숙을 얻기 위해 성숙의 방편으로 필요한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의도적으로 거절하면 세례의 완성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자기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견진성사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시대는 성령이 충만한 시대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사도 2, 38 ; 갈라 3, 1-5). 이 성령은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보면 세례성사는 성령을 준다고 되어 있는데(사도 19, 1-7), 그러나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안수를 받게 한 것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여 회개의 세례라는 심리 차원보다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의 능력적 선물을 받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은 세례성사의 완성을 위한 견진성사의 설정을 의미한다고 사도행전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안수예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의미와 효력을 낼 수 있습니다. 성령의 효과는 세례의 효과를 충만케 하고 신앙을 증거를 할 수 있는 굳센 힘을 내려 준다고 보았습니다(사도 1, 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견진의 표지를 무엇으로 정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바오로의 증언에 의하면 견진성사의 그 기초는 하느님의 계시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라고 하는 점에서 세례 후 안수는 계시적 은총을 내리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19, 6).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의 전통에서 보면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아주 밀접히 연관되어 두 성사를 구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초 세기에는 두 성사가 동시에 수여되었습니다. 지금도 동방교회에서는 두 성사가 동시에 수여되고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노 교부는 “세례를 뒤따르는 것은 무엇보다 도유”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안수가 따르고 안수와 더불어 성령을 부르고 성령이 내린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인은 유체라 볼 수 있는 기름으로 도유될 때 영혼은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세례성사 후에는 인호와 영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제가 안수하며 삼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슬기, 의견, 굳셈, 지식, 통달, 효경, 두려움의 성령이 내려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견진성사의 설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고 그 예표로 그리스도께서 어린이들에게 안수하신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견진성사의 효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사의 결과에 대해 세 가지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견진은 교회와 완전한 일치를 부여하고, 새 힘과 능력을 주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받고,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신앙을 옹호할 무거운 책임을 받는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견진은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의 완전한 구성인이 되게 합니다. 즉,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선교사와 같은 자리에 충실하게 참여하게 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의 성사처럼 인호가 박힙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영적 표시인 이 인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전례인 하느님을 예배하는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뜻입니다.
견진성사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의 증거자와 교회의 참 표지로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 힘은 용기 있는 증언과 신앙에 충실한 자로 만들어주는 은총입니다.
견진성사는 하느님께 받은 우리의 생명을 키워 성숙시키는 성사입니다.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의 영적 생활력에 결합함으로 생명의 영역과 역할이 증가됩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견진성사를 성장과 완성의 성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의 외적 표시
견진성사의 외적 표시에 대해서 초 세기에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다만, 사도행전에 안수와 함께 성령께 바치는 기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시대 이후 3세기 초에 안수가 교회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5세기 후에 이마에 기름으로 십자가를 긋는 예식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화를 거치지만, 견진성사의 본질은 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도유만을 통해서 성사가 집전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도유의 목적은 성령의 충만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것입니다.
견진성사의 집전 : 원천적으로 주교가 집전하도록 되어 있지만 주교의 유고시에는 사제들이 이를 대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반드시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견진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의 7은혜 : 견진성사는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게 되는데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의 일곱 가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은 믿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효경과 두려워함은 사랑의 실천과 그리고 굳셈은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기초인 견진성사
평신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므로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를 받게 됩니다. 곧 평신도는 세례성사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을 받아 강해지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 수행의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거룩한 백성으로서 왕다운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축성된 것은 생활 전반을 영적 제물로 모든 신앙 활동으로 봉헌하며,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사목자와 견진자
이런 성령은사의 진실성과 정당한 행사에 대한 판단은 사목자들의 의무이며, 사목자들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영감을 꺼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1테살 5, 12, 19, 21).
성령의 활동과 견진자
각 사람에게 성령은 원하시는 대로 은혜를 나누어 주시며,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은 각기 받은 은사에 맞게 서로 봉사하며, 성령께서는 또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은혜의 관리자가 되시어(1베드 4, 10), 사랑으로 몸 전체의 성장을 이루어(에페 4, 16)가도록 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은사라 해도 이런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과 교회의 건설을 위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각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 특히 사목자들과 일치하여 행사하여야 합니다.
견진자는 교회에 일치
사도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실현되는 것이며 이 신. 망. 애 삼덕은 성령께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의 마음속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직무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성화하시는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이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1코린 12, 7).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3-8).”
이사야 예언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성령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이사 11, 1-4).“
교황님들의 견진성사에 관한 언급
인노첸시오 3세는 “이마에 도유로써 안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말로 견진이라고 하니, 이로써 성령이 더 주어지고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Cum venisset 편지).”고 설명하였고, 인노첸시오 4세는 “견진이나 혹은 도유라고 불리는 안수로써…(편지, Sub Catholica professione.) 사도들이 성령을 수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룩뚜노 공의회에서 낭독한 미카엘 팔레올로고 황제의 신앙 고백에도 견진성사에 관한 구절은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성유를 바르는 주교의 안수”로 견진은 집전된다고 하였습니다.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선포된 아르메니아 인들을 위한 교령에서 견진성사의 재료는 기름과 발사마로 만든 크리스마라고 하였습니다(플로렌스 공의회 1권 A집 2부, 1944 로마). 트리엔트 공의회는 견진성사를 크리스마 성사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뜨리덴띤 공의회 회의록 제 2부 1911년).
베네딕토 9세께서는 “그러므로 논쟁 없이 확실한 것은 라틴 교회에 있어서 견진성사는 크리스마 성유, 즉 올리브기름과 발사마를 섞어 주교가 축성한 성유로 집전자가 이마에 십자표를 그음과 동시에 형식화한 말을 외움으로써 집전한다(편지. Ex quo primum tempore. 52)”고 하였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견진성사는 한 손의 안수로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써 수여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는 말마디를 외운다(1971년 8월 15일 견진성사에 관한 교황헌장)고 요약 결정 발포하였습니다.“
견진성사의 예식
미사 중의 견진예식은 복음 낭독 후에 실시합니다. 그 순서는 주교님의 훈시, 세례서원 갱신식, 안수의식,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 본 성사는 이루어지며 이어서 신자들의 기도로 시작하여 미사의 성찬전례로 이어집니다.
훈시의 내용은 독서의 내용을 설명하며 견진자와, 그 부모와, 대부, 대모와 모든 교우들에게 견진성사의 깊은 뜻을 이해시켜 주며, 세례 서원 갱신은 끊어버릴 것과 믿는 내용을 고백하는 것이며, 안수예식은 견진자들 위에 손을 펴들고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천주여, 여기 있는 이 교우들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니, 이 교우들에게 파라클리토 성령을 보내주시고, 지혜와 깨달음의 성령과, 의견과 굳셈의 성령과, 지식과 효성의 성령을 보내 주시며, 주를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은 견진자들에게 한 사람씩 이마에 십자표를 그리며, ” 성령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하고, 견진자는 “아멘” 으로 받고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성령과 우리의 생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 16- 17, 22- 25).”
출처: 가톨릭정보